이소룡과 영화 당산대형 (The Big Boss 1971)

당산대형은 전형적인 이소룡 영화의 첫 작품이다. 또한 당대 홍콩 최고의 영화사인 골든 하베스트의 레이먼드 초우 회장이 이소룡을 스카우트해서 만든 골든 하베스트 창립작이기도 하다.

아랫글에서 영화 당산대형에 대해 주제별로 살펴보자



영화 당산대형

당산대형의 영문 제목은 ‘The Big Boss’ 이다. 미국에서는 ‘Fists Of Fury’, 유럽에서는 ‘Fists Of Glory’ 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각본은 나유 감독과 이소룡이 함께 썼으며 태국에서 제작되었다. 당산대형은 홍콩 개봉 당시 흥행 기록 1위를 달성하며 이후에 성룡 홍금보 원표 등으로 이어지는 골든 하베스트 무술 액션 영화의 앞길을 밝힌 작품이기도 했다.



당산대형 이소룡 사망 후 국내 국내 개봉

당산대형은 1973년 10월 28일 스카라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당산대형은 이소룡의 첫 영화였지만 국내에는 정무문이 먼저 개봉되었고 이후로 두 번째로 개봉된 이소룡 영화였다. 또한 당산대형은 1973년 7월 20일 이소룡 사망 이후에 개봉된 작품으로 당시 수입가는 매우 비쌌다고 한다.

당시 한국에는 화교들이 많이 살았는데 당산대형 개봉 당시 스카라 극장에는 화교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이소룡이 등장하거나 통쾌한 액션이 나오는 장면이 나오면 화교들의 환호성 때문에 제대로 영화를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그때 이소룡의 위상은 정말 대단했다.



당산대형 스토리

당산대형의 스토리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힘없는 이민자들을 대신해서 목숨을 걸고 불의와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젊은이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당산대형의 배경은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얼음공장이다. 이 얼음공장은 실제로는 마약 사업을 하는 곳인데 이 얼음공장의 악덕 주는 마약 사업을 은폐하기 위해 힘없는 이민자들을 속이고 비참하게 죽이기까지 한다.

어머님의 싸우지 말라는 유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숨기며 얼음공장에서 일하게 된 순수한 청년 이소룡은 마약 사업과 관련된 악덕주의 실체를 알게 되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동료들은 이런 정의로운 이소룡을 ‘당산대형’이라 부른다.

이소룡은 악덕주의 하수인들을 주먹으로 통쾌하게 쓰러뜨리고 악덕주의 본거지까지 찾아가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한 혈투 끝에 악의 무리를 소탕하고 동료 이민자들의 평화를 되찾는다.



당산대형 흥행이유

이 영화는 중국인 이민자들에 대한 삶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당산대형은 그동안의 무술영화가 보이지 못한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박력 있고 스피드한 전개로 판에 박힌 짜고 치는 이전 무술영화와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홍콩 히어로 영화였다.

홍콩에는 당시 쇼브라더스라는 거물 영화제작사가 있었는데 쇼브라더스에서 만드는 무술영화들은 모두 동작의 합을 맞춘 짜고 치는 무술영화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소룡의 영화는 실제를 방불케하는 정말 새로운 스타일의 무술 영화였다.

또한 이전 쇼브라더스의 영화들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소룡의 당산대형은 해외 올로케이션 영화였다. 이런 이소룡의 해외 올로케이션 영화는 이후 맹룡과강이나 용쟁호투, 사망 유희까지 이어진다.

당산대형의 흥행의 가장 큰 이유는 이소룡이라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이었다. 무술로 단련된 준비된 액션배우 이소룡은 통쾌한 액션과 강렬한 외모로 당시 관객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이소룡은 기존의 어설픈 배우들과는 완전히 다른 배우였다. 대사와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있었고 절제되었지만 순간적으로 파워가 폭발하는 액션은 관객들의 심장에 펀치를 날렸다.



당산대형 연출자로서의 이소룡

이소룡은 로프나 트램펄린들을 이용해서 무술 고수들이 붕붕 날아다니는 기존 무술영화에 한계를 느꼈다. 이소룡은 당산대형에서 각본과 부분적으로 연출에 참여했다. 하지만 첫 메가폰을 잡은 오가양 감독과의 마찰이 심해 후에 나유 감독이 뒤늦게 합류하여 영화를 함께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소룡은 자신이 생각하는 무술영화의 모습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당산대형을 보면 부분적으로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몇몇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이런 장면은 감독과의 연출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이소룡이 원하는 방향으로 연출이 되지 않아서 나온결과이다.



마무리 글

이소룡의 당산대형은 이소룡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무술영화의 시대를 연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볼 수 있다. 당산대형이 개봉하던 시기는 우리나라에 10월 유신의 여파가 불이 붙던 시기였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이소룡의 출현은 이소룡의 기괴한 기합소리와 더불어 민중의 분노와 설움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참으로 원초적이고 폭발적인 이소룡의 액션은 그 시대를 향안 울분의 외침이며 비통한 울음이었다. 이소룡의 성공은 시대가 낳은 필연적이고 당연한 결과였다. 이소룡은 텅 비어있던 대한민국의 가슴을 넘치도록 채워주었다.

당산대형은 우리나라에서 58일간 상영되었고 총 20만 9천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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